Ethi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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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Ethiopia - 지리, 역사

2019-02-02 1666
About Ethiopia

이디오피아 (Ethiopia)

'이디오피아'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구를 먹여 살려라'라고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동아프리카에 있는 이디이피아는 굶주린 아이들과 라이브 에이드(Live Aid)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이디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로, 독립을 위해 투쟁한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국민들이 살고 있다. 7세기경 이슬람으로 변모한 주변국가와 달리 평범하지 않은 기독교 정교의 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디오피아를 여행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일은 아니다. 여행자를 위한 시설이 미비하며 E메일을 확인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자연경관은 매혹적이며, 사람들은 당신을 환영할 것이며, 역사의 향기가 명백히 남아있으며 사진만 찍고 가는 여행자들이 북적 이는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또한 모든 것은 신발끈을 바짝 동여맨 저렴한 여행이 가능하다.

통계 자료

국명 : 이디오피아 연방 민주공화국
면적 : 1,127,000 sq km
인구 : 5천 5백만 명
수도 : 아디스 아바바(Addis Ababa, 인구 3백만 명)
인종 : 오로모(40%), 암하라/티그렌(32%), 시다모(9%), 상켈라(6%), 소말리(6%), 아파(4%), 구라게(2%)
언어 : 암하릭, 티그린야, 오로민가, 구아라긴가, 소말리, 아랍어, 영어
종교 : 무슬림, 이디오피아 정교, 애니미즘
정부 : 연방 공화국

지리 및 기후

이디오피아는 아프리카 동부의 내륙에 둘러싸인 국가다. 서쪽은 수단, 북쪽은 에리트레아, 서쪽은 작은 나라인 지부티와 소말리아가 남부국경까지 이어지며 남쪽은 케냐다. 이디오피아의 면적은 1,127,000 sq km로 중앙의 고지대 분지가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GReat Rift Valley)를 포함한 깊은 협곡으로 인해 분리돼있다. 국토의 12%만이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는데, 국토의 서쪽인 범람에 의해 형성된 평야인 블루 나일 지대와 고지대에서 대부분의 양식이 재배된다. 

이디오피아의 산림은 비율이 감소하는 추세다. 연료를 위한 벌목과 건설자재 사용으로 인해 적어도 국토의 77%에 해당하는 나무가 25년 동안 벌목됐다. 19세기 후반 호주 유칼립투스가 수입돼 살림황폐화를 방지할 목적으로 식목했으나 빨리 자라는 식물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해 현지 동물의 감소를 초래했으며 유칼립투스 산림은 토지 부식의 경향도 나타내고 있다. 이도이피아의 야생동물은 그다지 많지 않아 사파리 여행은 다른 아프리카 국가가 적합하다.

다양한 영양류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수종의 원숭이와 비비가 서식하고 있다. 하지만 조류에 관심이 있다면 이디오피아가 적당한 장소로 20종 이상의 지방특유의 조류가 있으며 조류를 보러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이점도 있다. 이디오피아는 적도에 근접하고 있어 중앙 분지는 연간 평균 기온이 16도이며, 홍해와 인접한 동부와 수단과 인접한 서부지역은 매우 덥다. 크렘트 또는 우기는 6월 중순에서 9월 중순이며 적은 비가 3-4월에도 내린다.

역사

이디오피아의 역사는 오래됐다. 리프트 밸리는 인류의 요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3백 5십만 년 전의 루시족 직접인류의 가장 오래된 화석이 1974년에 발견되기도 했다. 이디오피아의 통치역사는 5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 남아있는 기록은 기원전 천년의 기록인 성경적인 길에 대한 이디오피아인의 이야기가 오래된 기록이다.

메네릭(Melelik) 1세인 세바 여왕의 아들이 이디오피아의 최초의 황제로 그의 왕조는 이디오피아를 1930년부터 1974년까지 지배한 하이레 세라씨에(Haile Selassie)의해 종료된다. 지역적인 전통에 의하면 고대 이디오피아인은 유대교인으로 이디오피아 유대교 집단은 1980년대까지 이디오피아에 생활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모두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기독교는 기원전 330년에 비숍이 된 성 프루멘티우스(St Frumentius)에 의해 악슘 왕조(Kingdom of Axum) 때 전래됐다.

악슘은 기원전 632년 메카로 이동하기 위한 성스러운 전쟁을 펼친 이슬람을 물리쳤고 기독교 왕국은 그리스도교 이외의 것을 잘라내 이슬람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다음 수 천년 동안은 왕국이 다양한 이교도 집단으로부터 침략을 받았으며 일시적으로 유목민이 되기도 했고 무슬림이 12세기와 14세기에 동부지역으로 이동해 들어오기도 했다. 16세기에는 이슬람 왕국이 오스만 제국의 지지를 얻어 악슘 왕국의 권력을 위협했다.

확실한 반전이 이루어진 후 악슘 황제는 18세기에 새로운 지방을 구성하고 100년간의 경쟁자들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흩어져 있던 제국은 결국 라스 카사(Ras Kassa)에 의해 재결합이 되고 카사는 1855년 테오드로스 황제로 등극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의 성채는 영국 원정군에 의해 포위를 당한다. 연속적으로 황제는 유럽 군대에 사적인 우호를 유지하며 제국을 연장시켜 나갔다. 1936년엔 무솔리니의 이태리 군에 의해 점령당했으나 1941년 독립을 재획득한다. 

1962년 하이레 셀라씨에 황제는 에리트리아를 침략해 30년간 게릴라 분쟁에 휘말린다. 하이레 셀라씨에은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 받았으나 그의 우월주의와 교회의 부정축재로 인해 많은 농부들이 가난하게 되면서 비난 받기 시작했다. 1974년 학생, 노동자, 농민에 의한 반대시위가 일어났고 셀라씨에를 대신해 군사정권이 들어선다. 멩기스투 하이레 마리암(Mengistus Halie Mariam)의 지도하에 새로운 정부가 성립되고 무역연합 지도자에 대한 감금과 교회에 대한 금지가 시행됐으며 소련의 경제 원조를 받는다. 정국은 혼란해졌고 에리트라와의 분쟁은 소말리의 개입으로 인해 더 혼동스러워졌다.

소련군과 쿠바군이 양국의 군대를 지원했으나 에리트리아 게릴라를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멩기스투는 징병제, 통행금지, 인구 전환(시골지역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해 채택한 재앙스런 착상), 인민 위원회의 정책은 그의 정권을 약화시킨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 에르트리아가 이디오피아의 주요한 항구를 점령하게 됐고, 티그라이 인민 해방연합이 전쟁에 참여하게 됐으며 소련은 전쟁에서 철수한다. 커피 값이 하락하고 거대한 기근이 국가를 신음하게 한다.

1991년 5월 멩기스투가 도망가고 반군 연합의 티그라이얀 메렐스 제나위(Meles Zenawi)가 정권을 차지한다. 새 정권은 기근에 직면한 6백만 명과 파산된 국가경제와 빈사상태의 공업과 농업을 물려받았으나 민주정치로 이양을 결심한다. 새로운 국가구조가 1994년 승인되고 이디오피아의 9개 주가 원한다면 독립하도록 조치했다. 이디오피아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가 1995년에 실시돼 이디오피아 인민 혁명 민주 전선이 주요 야당의 선거 보이콧에도 불구하고 98%의 득표를 얻어 승리한다.

멜레스 제나위가 수상에 임명되고 티그라얀 내각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에리트리아와의 관계는 최근과 1998년 6월 들어 악화돼 무장충돌이 발생해 국경이 봉쇄됐다. 전쟁은 지속되고 있으며 격렬해지고 있어 국경 지대는 매우 위험한 지역이 되고 있다.

source : p0iehiwf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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