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Burkina Faso - 역사, 문화
브르키나파소 (Burkina Faso)
소란스런 쿠데타와 반대 쿠데타가 연속적으로 발생하던 1970년대를 보면서 누가 부르키나 파소가서아프리카의 문화적인 애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겠는가? 생각과 달리 문화적 영향력이 선댄스 영화제와 맞먹는 영화제를 2년 주기로 개최하고 있는 부르키나 파소는 '서아프리카의 유타'가 돼가고 있다. 영화제가 열리지 안는 해에는 다른 문화 축제가 개최를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 부르키나인은 식민지주의와 노예제도로 인한 시민들의 냉대로 고생하던 당당한 제국의 오랜 후손들로 더 강해지고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오고 있다. 부르키나 파소는 돼지 귀로 비단 안감을 생산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의 하나지만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기' 철학과 호의적인 태도가 높게 평가 받고 있다. 천연자원은 희소한 국가지만 아름답게 만들려는 갈망과 문화적인 다양성을 간직한 나라다.
통계 자료
국명 : 부르키나 파소
면적 : 274,2000 sq km
인구 : 10,891,159명
수도 : 와가두구(Ouagadougou, 인구 441,514명)
인종 : 모시, 구룬시, 세누포, 로비, 보보, 망드, 푸라니
언어 : 프랑스어(공식언어), 인구의 90%가 수다닉 계열의 종족언어를 사용함.
종교 : 토착신앙(40%), 이슬람(50%), 기독교(대부분 로마 천주교 10%)
지리 및 기후
부르키나 파소(구 상 볼타; Upper Volta)는 용접용 안경모양으로 사헬의 가장자리에 위치해 남동쪽에 베닌(Benin), 토고(Togo), 가나와 남쪽에 코트 디브와르, 서쪽에 말리, 남쪽에 니제르와 국경을 접한다. 콜로라도 두 배 크기로 서아프리카에 작은 국가에 속하지만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분포는 동일하지 않고 불완전하며 북부지역 대부분이 황폐해져있고 남부와 중부지역만 얇은 초목지역이다.
대부분의 국토는 평지로 불모지이거나 수목이 발육 불량한 지역이다. 북부로 가면서 목초지는 얇아져 사하라의 모래언덕과 연결된다. 반대로 남부는 우림과 사탕수수 농장지대이며 동부는 연속적인 고원과 녹색의 산림지대다. 부르키나 파소의 주요한 강은 마훈(Mahoun, 흑 볼타), 나지논(Nazinon, 적 볼타), 나칸베(Nakanbe, 백 볼타)로 중앙 고원에서 남부와 동부 방향으로 흐른다. 강들은 부목사의 달걀처럼 가뭄으로 파괴된 대지에 물을 제공하고 있다. 벌목과 사막화는 가뭄과 급속한 인구 성장, 과다한 목초 소모, 경기 침체와 더불어 부르키나 파소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이 결과로 수도인 와가두구 주변 70km가 완전히 나무가 없는 지역으로 변모했다. 목재를 가장 중요한 에너지로 사용하는 주민들로 인해 국토는 뼈처럼 깨끗해지고 있다. 일부 공원과 서식지가 맹공격에도 살아남아 있다. 주요 국립공원에선 코끼리, 하마, 버팔로, 영양, 악어를 아직도 볼 수 있다. 부르키나 파소의 기온은 세네갈과 비슷해 두 계절로 구분된다. 11월에서 5월이 건기이며 6월부터 10월이 우기다. 일년 중 가장 더운 시기는 5-6월이며 먼지를 동반한 하마탄 바람이 12월에서 2월 사이 지속적으로 불어와 사람들은 예민하게 만든다.
역사
다수의 부르키나 파소 인구는 15세기에 가나 주변을 질주하던 기수들로 모시 제국의 후손들이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달리 사회계층이 존재하지 않던 마을 구조를 운영했으며 모시족은 윈저 성의 상사보다 더 일치하기 어려운 귀족 태생의 제국을 유지했다. 법, 행정기구, 정부조직이 발달돼 있었고 기병대가 영토를 방어했다. 후에 이슬람 국가와 인접하고 호의적인 부르키나 파소가 어째서 서아프리카에서 무슬림이 적은 국가중의 하나가 됐는지 의문시되고 있다.
상 볼타는 프랑스가 지배하기 시작한 1897년까지 안정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맨하탄의 작은 블록보다 더 작게 세분하려는 정책에 반대해 인접국가로 이동해 작은 제국을 유지한다. 상 볼타의 일부는 말리, 니제르, 코트 디브와르로 편입됐고 남아있던 상 볼타는 이웃국가인 코트 디브와르의 프랑스인 농장으로 원주민 노예가 이동한다. 다음 60년 동안 코트 디브와르가 서아프리카에 여왕으로 남아있었으며 상 볼타는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이었다.
20세기 중반에 식민정책이 약화되면서 상 볼타는 독립을 원하는 국가 대열에 합류한다. 1960년 모시족인 모리스 야메오고(Maurice Yame'ogo)가 최초의 대통령에 당선된다. 불행히도 야메오고의 선거를 통한 승리는 실정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졌다. 경제적인 정책의 실패와 부패에 대한 자유로운 성향은 일반 민중에 의한 폭동과 시위를 야기했다. 1966년에는 군이 주도한 쿠데타가 발생해 야메오고가 추출 당해 공공기금에 의해 생활한다.
야메오고의 부재로 인한 권력의 공백은 연속적인 쿠데타 끝에 젊은 사회주의자인 토마스 산카라(Thomas Sankara) 대위가 통제권을 장악한다. 산카라는 독불장군으로 변해 공공부분의 발전과 함께 국호를 부르키나 파소('정직한 사람들의 땅' 또는 '청렴한 사람들의 땅'이란 뜻)로 개정하고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실행한다. 집중공격 방식으로 모든 아동에게 홍역과 황열병에 대한 예방접종을 실시하고 모든 마을에 자체에서 의사를 교육했으며 350여 개의 학교를 신설하고 장관의 특권을 약화했으며 니제르 국경까지 새로운 철로를 건설했고 와가두구를 비(非)마르크스 색채로 채색했다. 침착하게 진행된 사회주의 정책은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지지를 얻었으나 엘리트 그룹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장관들의 임금을 25% 삭감으로 착실히 진행되는 정책이 호응을 얻었으나 산카라의 회의에 대한 습관은 종족 지도자들이 전통적인 양식의 뿌리가 흔들릴까 걱정하게 만들었다.
서양국가들은 정책에는 인상을 쓰지 않았으나 서양 제국주의를 공공연이 비난하던 가다피(Gaddfi)와 산카라의 친분관계는 문제시했다. 예상대로 당원과 조언자들을 없앤 산카라 정권은 오래가지 못하고 브레이스 꼼파오레가 쿠데타로 재집권한다. 쿠데타는 산카라를 와가두구 외각으로 끌고 가 저격함으로써 완성됐다. 꼼파오레는 권좌를 회복하고 정부인사의 임금을 산카라 이전 수준으로 회복시켰으며 식품 공급을 감소시켰다. 불만스러운 시민들은 산카라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리베리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부르키나 파소 정부에 대해 미국은 발끈하고 있는 상황이다. 꼼파오레는 저널리스트 노벳 종고(Nobert Zongo)의 사망과 관련해 국민들로부터 불안한 상황에 처해있고 정부정책은 실종되어 있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79 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508
경제 성장률 : 5.4%
인플레이션 : 7.8%
주요 산업 : 순면, 음료, 농업 생산, 비누, 담배, 모직, 금
주요 교역 대상국 : 프랑스, 코트 디브와르, 이태리, 태국
문화
부르키나 파소에는 60개 이상의 인종이 살고 있고 각자의 사회와 문화적인 구분을 갖고 있으며 가장 두드러진 인종은 부르키나베(Burkinab'e)족이다. 주요 그룹으론 보보 디울라소(Bobo Dioulassa)에 사는 보보복과 푸라니, 로비, 세푸노가 있으며 가장 인상적인 인종은 모시족이다. 모시는 황제 모로-나바(Moro-Naba) 또는 왕실의 후손들로 사회적으로 높은 명성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모시족의 일부는 무슬림이지만 부르키나 파소는 서아프리카의 다른나라와 달리 이슬람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나라이다. 절반 이상의 인구가 전통적인 애니미즘 신앙을 믿고 있다. 각 인종은 고유한 예술 방식을 갖고 있으며 모시, 보보, 로비의 예술은 상당히 유명하다. 모시는 영양으로 만든 가면으로 유명한데 백색 또는 적색으로 칠해진 2m가 넘는 인상적인 가면이다. 보보는 다산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여신인 도를 위해 사용하는 적, 백, 흑의 줄무늬가 들어간 나비 가면이 유명하다.
보보족은 동물원이 도고도 남을만한 다양한 동물 가면을 만드는데 나비 가면은 유일하게 수평으로 쓴다. 로비족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 보존된 전통을 갖고 있는데 젊은 소년들을 위한 통과의례 의식인 됴로(Dyoro)가 유명하다. 로비 예술품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가치가 높은 목각 조각이 있다. 부르키나 파소는 아프리카 예술과 문화의 부흥을 주도하고 있다. 매 2년마다 열리는 페스파코 영화제(FESPACO Film Festival)는 1969년에 최초가 개최됐으며 많은 발전을 거쳐 현재는 헐리우드 독립영화의 아프리카 버전이 되고 있다.
영화제가 열리지 않는 해에 열리는 다른 문화행사는 음악, 무용, 극장공연을 포함한 다양한 예술적인 작업이 이뤄진다. 부가적인 것으로 부르키나 파소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기념품 시장을 갖고 있다. 독특한 음식을 위해 소스가 필요하다고 믿었던 구만드(Goumands) 덕에 부르키나 파소의 모든 음식은 소스와 함께 나온다. 부르키나 파소가 프랑스와 연관을 가졌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기도 하지만 riz souce(밥과 소스), riz gras(밥과 야채 소스), souce de poisson( 생선 소스), boeuf souce aubergine(소고기와 가지와 소스), mouton sauce tomatoe(양고기와토마토와 소스) 등 모든 음식을 소수와 함께 즐길 수 있다. 지방에선 숲에서 잡은 쥐고기(소스를 포함하거나 안 하거나 상관없이)가 고려해 볼만한 별미다.
source : UEBOZG2f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