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Bostwana - 지리, 역사, 문화
보츠와나 (Bostwana)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성공한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영국의 보호령을 오랫동안 무시하면서 보츠와나는 1966년에 독립을 하게 되며 그 후 바로 세계에서 가장 매장량이 많은 다이아몬드 광산 중에 3곳을 발견함으로써 뜻밖에 엄청난 행운을 얻게 된다. 오늘날 보츠와나는 비교적 개화된 정부가 있으며 의료, 교육, 경제수준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남아프리카와 경쟁하고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좁다란 동부지역을 제외하고 보츠와나는 대개 길이 없는 황량한 사반나, 사막, 습지대, 염전으로 되어 있다. 보츠와나의 천연자원을 확실하게 보존하기 위해 보츠와나 정부는 높은 비용, 낮은 효과에 기초한 관광수입만 끌어들이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지독한 구두쇠와 유약한 사람이라면 보츠와나가 대담하고 부유한 여행자를 위한 여행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통계 자료
국명: 보츠와나 연방공화국
면적: 581,700 sq km (226,900 sq mi)
인구: 1백40만명
수도: 가보로네(Gaborone) (인구 15만명)
인종: 츠와나 60%, 칼랑가, 산, 음부쿠쉬, 예이, 헤레로
언어: 세츠와나, 세칼랑가, 영어
종교: 조상 숭배, 기독교
정체: 입헌 민주제
지리 및 기후
아프리카 남부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어 육지로 둘러싸인 보츠와나는 프랑스와 같은 크기나 텍사스보다 약간 작은 지역을 차지하면서 남북으로 1100킬로미터(680마일), 동서로 960킬로미터(595마일)에 이른다. 림포포(Limpopo)강과 몰로포(Molopo)강이 흐르는 남쪽으로는 남아프리카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동쪽으로는 짐바브웨와 국경을 이루고 있는 한편 나미비아가 보츠와나의 서쪽과 북쪽국경을 형성하고 있다. 보츠와나의 북쪽 끝에 있는 카춘굴라(Kazungula)에서는 보츠와나, 짐바브웨, 잠비아, 나미비아가 잠베지강(Zambezi River) 중류의 한 지점에서 모두 접하고 있다.
보츠와나의 지형은 거의 한결같이 평지로 반 건조지대인 칼라하리(Kalahari)사막이 중부와 남서부지역을 포함하여 국토의 거의 85%를 뒤덮고 있다. 북서부는 오카방고강(Okavango River)이 나미비아에서부터 흘러오며 1만5천 평방 킬로미터(5850평방 마일)의 복잡한 수로와 오카방고 삼각주를 형성한 섬들을 만들면서 모래사막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보츠와나의 건조한 지역에는 독을 내뿜는 3종류의 코브라를 포함하여 70종 이상의 뱀이 서식하고 있다. 독이 있는 붐스랭(나무 뱀을 뜻하는 네덜란드어)과 덩굴 뱀이 오카방고에 흔히 있지만 대개 사람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아프리카 남부의 보츠와나가 풍부한 LBJ('작은 갈색 뱀들')의 견본 장이기도 하지만 일련의 화려하고 이국적인 조류가 서식하고 있기도 하다. 그 중에는 멋진 왕관모양을 한 학, 샐죽하여 '고-어웨이(go-away)'를 외쳐대는 회색 로우리, 엷은자색 가슴 털이 있는 아름다운 롤러카나리아, 깃펜을 꽂은 서기를 닮은 새로 뱀을 잡고 위아래로 펄쩍 이면서 뱀을 실컷 혼내주는 뚱한 뱀 잡이수리 등이 있다.
보츠와나의 멋진 자연공원과 보호구역은 코끼리, 치타, 사냥개, 표범, 하이에나, 기린, 하마, 얼룩말을 포함하여 놀랄 만큼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다.보츠와나의 대부분은 아카시아나 가시가 많은 키 작은 관목들이 자라는 사바나로 덮여있다. 보츠와나에서 유일하게 낙엽성 모파인(mopane)숲이 북동부에 있으며 산족의 주요 식량이었던 식용 나무열매가 열리는 몬공가(mongonga)나 마룰라(marula)나무뿐만 아니라 상업용 목재로 쓰이는 나무도 있다. 마룰라나무의 부드러운 목재는 현지공예품으로도 사용되며 그 열매는 현지인의 맥주로 가공되기도 한다.
남회귀선에 걸쳐있지만 보츠와나에서는 기온이 양극을 달린다. 낮에는 보통 맑고 따뜻하고 해가 나지만 밤에는 시원한 정도부터 혹독하게 추운 정도까지 다양하다. 6, 7월에 칼라하리사막에서는 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것이 보통이며 높은 습도와 서리 내리는 추위가 일반적이다. 보츠와나는 대부분 건조하지만 여름의 우기는 대략 11월부터 3월까지 계속된다. 5월말부터 8월까지는 보츠와나의 어느 지역에서나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역사
산(San)족(부쉬맨)이 적어도 3만년 동안 보츠와나에 거주한 것으로 여겨진다. 산족에 뒤이어 목축생활을 하는 코이코이(Khoi-Khoi)(호텐토트)족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AD1,2세기경에 아프리카의 북서부와 동부지역에서 이주해와 코베강(Chobe River)을 따라 정착한 반투(Bantu)족이 나타나게 된다. 츠와나(Tswana)족을 포함하여 또 다른 반투 족이 18세기까지 칼라하리 사막에 걸쳐 소규모로 비교적 평화롭게 살았다. 분쟁은 분열을 통해 해결되었으며 불만족스런 집단은 간단히 같이 모여 떠돌아다니다 다른 곳에 다른 영토를 세우면 그만이었다.
1800년까지 칼라하리 사막주변에 목초지로 적당한 모든 땅에는 목축민들이 정착을 하게 되고 평화로운 분열은 더 이상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유럽인이 케이프에 도착하여 북쪽으로 팽창하고 있었으며 1818년 남아프리카에 사는 줄루(Zulu)족이 합쳐진 후 감행한 공격으로 츠와나족의 마을이 아주 취약하게 된다. 이에 대응하여 츠와나족은 재 집결하여 사회를 고도로 조직화하게 된다. 각 츠와나국은 세습군주가 통치했으며 왕의 백성들은 중심에 집중된 마을과 인접마을에 살게 된다. 마을에 기초한 츠와니족 사회의 규율과 조직은 1800년대 초에 도착하기 시작한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인상적인 것이었다.
누구도 수많은 츠와니족을 개종시키지 못했으며 가끔 뒤이어 도착한 유럽인과의 거래에서 현지인에게 불리하게 조언하기도 했다. 한편 보어인(Boers(네덜란드 이주민))들이 츠와나족과 줄루족의 영역을 지나고 거주민에게 백인의 규율을 강요하면서 바알(Vaal)을 넘어 대 여행을 시작한다. 많은 츠와나인들이 보어인의 농장에서 일하게 되지만 그러한 협동은 거의 불행한 것이었으며 가끔 폭동과 폭력으로 얼룩지게 된다. 1877년까지 그러한 반감은 영국이 마침내 트랜스바알(Transvaal)을 합병하기 위해 개입하고 첫 번째 보어전이 터지는 정도까지 치솟게 된다. 보어인은 1881년 프레토리아 협약에 따라 빈둥거리다 1882년 츠와나영토로 다시 이주해 옴에 따라 츠와나족이 다시 영국의 보호를 요청하도록 촉구하게 된다.
영국이 개입했지만 츠와나족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는 않았다. 몰로포강(Molopo River) 남쪽지역은 베추아나랜드(Bechuanaland) 영국 직할식민지가 되었으며 강 북쪽지역은 베추아나랜드(지금의 보츠와나) 영국보호령이 되었다. 몇 년 후 베추아나랜드의 통치권을 세실 로데스(Cecil Rhodes)의 영국 남아프리카회사(British South Africa Company)에 양도할 것처럼 보이던 때를 제외하고 영국이 1966년까지 베추아나랜드를 계속해서 통치하게 된다.1950년대와 60년대에 민족주의가 형성되고 1955년 영국은 베추아나랜드의 지배권을 포기할 것을 준비하게 된다. 1960년의 샤프빌 대학살(Sharpeville Massacre)에 뒤이어, 베추아나랜드 인민당(Bechuanaland People's Party)이 독립을 목표로 하면서 형성된다. 1965년 보통선거가 치뤄지고 세레체 카마(Seretse Khama)가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1966년 9월 30일에 보츠와나 공화국은 독립을 하게 된다.
보츠와나는 1967년 오라파(Orapa)부근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됨에 따라 경제적으로 변화를 겪게 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저임금 층이지만 이 광산으로 인해 생긴 부유함으로 보츠와나는 막대한 외환을 보유하고 풀라(pula)화(보츠와나 화폐단위)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한 통화로 만들게 된다. 보츠와나의 군사비용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보츠와나 정부는 실질적이고 서방에 우호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최근에 보츠와나의 가장 큰 문제는 실업, 도시집중, 폭발적인 인구증가이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129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7,888
인플레이션: 10%
주요 생산품: 광업(다이아몬드, 구리, 니켈), 농업, 임업
주요 교역국: 스위스, 영국, 남아프리카
문화
보츠와나의 초기 부족종교는 주로 조상들이 지하세계에서 가족문제를 지배하고 가족의 우두머리를 통해서만 접촉할 수 있는 제례 의식이었다. 종교의식에는 남녀 성인식과 비를 내리게 하는 의식이 포함되어 있다. 일부다처제가 관습이었으며 남자의 부동산은 그의 첫째 부인의 아이에게 세습되었다. 산족의 민속은 착한 소년인 은오디마(N!odima)와 장난을 좋아하는 트릭스터(원시민족의 신화에 나와 주술, 장난 등으로 질서를 문란시키는 신화적 형상)인 그카와마(Gcawama)가 잘 혼합된 자연현상에 대한 초자연적인 설명으로 가득하다. 선교단은 거의 모든 전통관습을 몰아냈으며 기독교가 현재 보츠나와에서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영어가 보츠와나의 공식어이지만 가장 일반적인 언어는 인구의 90%이상이 이해하는 반투족의 언어인 세트와나(Setswana)어이다.
원래 보츠와나의 예술가들은 개인적인 미학을 도자기, 직물, 연장 같은 실용적인 도구에 주입한 평범한 공예가들이었다. 보츠와나의 바구니는 기린의 눈물, 황소의 소변자국, 얼룩말의 이마같이 상상력을 불러내는 이름으로 된 도안을 사용하여 아주 정교하다. 기독교 선교사들이 도착한 이후에야 토착언어가 글로 쓰여졌기 때문에 보츠와나에는 문학전통이 그리 많지는 않다. 전승된 모든 고대 신화와 토착민의 찬양시는 구전되었으며 최근에 와서야 문자로 기록되고 있다. 보츠와나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문학가는 남아프리카 출신의 베시 헤드(Bessie Head)이며 그는 세로웨(Serowe)에 정착하여 마을생활의 어려움과 아름다움을 기록했다.
역사적으로 남자들은 가축을 돌보고 주로 고기와 우유를 공급하는데 책임이 있는 반면 여자들은 야생과일과 야채를 모아서 먹게 된다. 요즘에는 기장과 사탕수수 포리지(오트밀에 우유 또는 물을 넣어 만든 죽)가 대부분의 보츠와나식사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지만 이것도 수입된 옥수수로 급속하게 대체되고 있다. 외진 곳에 사는 사람들은 커다란 땅속식물인 모라마(morama), 칼라하리 송진으로 알려진 식용버섯으로 식사를 조달한다. 여행자는 뜨거운 재속에서 익히거나 소금물에 끓이거나 말리거나 튀길 수 있는 유충 같은 굼벵이인 모파인(mopane)벌레가 섞인 요리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전통음료로는 합법은 아니지만 아주 많이 들이킬 수 있는 팜와인, 증류한 흑설탕이나 버섯류로 만든 크가디(kgadi)가 있다. 합법적인 가정 양조술로는 싹을 낸 사탕수수로 만든 저렴한 맥주인 보잘롸(bojalwa)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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