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Lithuania - 지리, 기후, 역사
리투아니아 (Lithuania)
가수 프랭크 잡파(Frank Zappa)의 기념조각상이 있다는 긍지를 지닌 나라를 방문한다는 것은 가치가 있다. 리투아니아는 반체제 조각상뿐만 아니라 1990-1991년의 독립을 향한 용감하고도 격정적인 운동으로 잘 알려졌듯이 발틱 국가 중에서 가장 활기에 찬 나라이다. 리투아니아는 한때 이웃나라 폴란드와 함께 발틱 해에서 거의 흑해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하였듯이 중부유럽의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이웃 에스토니아나 라트비아인들 보다 훨씬 외향적이고 덜 조직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틱 이웃나라와 다르게 여전히 로만카톨릭을 따르고 있다. 비록 나라가 작고 장엄한 풍광은 없지만 리투아니아는 흥미로운 큐로니안 모래톱(Curonian Spit)과 흔치 않은 십자가언덕(Hill of Crosses)과 함께, 유서 깊고 활기찬 수도 빌니우스(Vilnius)가 지닌 도시의 즐거움 등 다양한 볼거리를 자랑하고 있다.
통계 자료
국명: 리투아니아공화국
면적: 65,200평방km
인구: 370만
수도: 빌니우스(인구 575,000)
인종: 리투아니아인(80%), 러시아인(9%), 폴란드인(7%)
언어: 리투아니아어
종교: 로만카톨릭이 전반적으로 우세, 일부 러시아정교, 러시아종교의 한 분파인 구 종교(Old Believers), 루터교
정체: 독립공화국
지리 및 기후
리투아니아는 발틱국가들 중 가장 큰 나라로 크기가 아일랜드와 거의 비슷하다. 북으로는 라트비아, 남동쪽으로는 벨라루스, 서쪽의 발트해, 남서쪽으로는 폴란드와 잘려진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지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는 대부분 평평한 지형이며, 제일 높은 지역인 유아자피네스(Juazapines)가 294m에 불과하다. 리투아니아의 발틱해안은 약 100km인데, 그 반은 연필같이 가느다랗고 높이 66m에 이르는 독특한 큐로니안 모래톱으로 이루어져 있다.
리투아니아의 4분의 1이상은 삼림지대이며 주로 남서부에 있다. 엘크, 사슴, 야생돼지, 늑대, 살쾡이 등이 숲에 살고 있지만 안내원 없이는 이런 동물들을 구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리투아니아에는 약 2000마리의 수달이 살고 있고, 남쪽에 있는 주빈타스(Zuvintas)호수는 물새의 중요한 부화장소이자 쉼터이다.
리투아니아에는 5개의 국립공원이 있고, 자연보호구역이 많다. 높은 모래언덕, 소나무 숲, 모래사장, 산호초, 해변 등의 독특한 환경을 지닌 쿠르시우 네리야(Kursiu Nerija) 국립공원이 가장 유명하다. 리투아니아의 기후는 온화하다. 5월에서 9월의 최고 낮 기온이 섭씨14도에서 22도이고, 11월에서 3월은 거의 영상 4도 이하이다. 7월과 8월은 가장 덥고 습기가 많고 지속적으로 소나기가 내린다. 5월, 6월 그리고 9월은 훨씬 쾌적하지만 6월말은 천둥이 치는 경우가 있다. 가을에 눈이 왔다가 녹은 다음이나 겨울에 쌓였던 눈이 봄에 녹을 때, 발이 진창에 빠지는 일은 흔한 일이다.
역사
현대 리투아니아인의 조상은 발트족(Balts)로 알려져 있으며 기원전 2000년 남동쪽에서 온 것으로 추정한다. 12세기경 발트인들은 모두 자연종교를 신봉하는 부족그룹으로 나누어졌다. 리투아니아에서 두 주요그룹은 서부의 사모기티안(Samogitians)족과 동부의 아우크스타이티아이(Aukstaitiai)족이다. 리투아니아 남서쪽과 폴란드의 인접지역에는 훗날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인으로 동화된 또 다른 발트족인 요트빈기안스(Yotvingians)족이 살고있었다.13세기 중엽 아우크스타이티아이족의 지도자 민다우가스(Mindaugas)가 짧은 기간이지만 카톨릭 분위기에서 리투아니아종족들을 통일하였다. 이교도 왕자들이 반격하였지만, 1290년 대공이 된 기독교인 뷔테니스(Vytenis)에 의해 정복당하였다.
1316년에서 1341년까지 대공이었던 그의 동생 게디미나스(Gediminas)는 초기 러시아국가의 쇠퇴를 틈타서 리투아니아의 국경을 남쪽과 동쪽으로 확장하였다. 게디미나스의 손자, 요가일라(Jogaila)는 카톨릭으로 개종하고 1386년에 폴란드의 왕위계승공주와 결혼하여 400년간 두 나라의 유대를 강화한다. 1387년 아우크스타이티아이족은 세례를 받고, 1413년에는 사모기티안스족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리투아니아는 유럽에서 마지막으로 기독교국가가 되었다.
1569년 루브린조약(Treaty of Lublin)에서 두 나라의 공식적인 연합이 이루어진 후 16세기말까지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의 아우국가로 전락했다. 리투아니아 상류계급은 폴란드 문화와 언어를 사용했으며, 농민들은 농노가 되었으며 연합국가는 연방국가의 형태(Rzeczpospolita)가 되었다.스웨덴과 러시아의 이반황제(Ivan the Terrible)처럼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리보니아(오늘날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558년 최초로 이반이 침입하여 25년간의 리보니아전쟁이 시작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그리고 이후 스웨덴이 이반과 그 추종자들을 몰아 내는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1592년 이들이 러시아세력을 몰아내고 카톨릭국가인 폴란드-리투아니아와 개신교 스웨덴이 발틱지역에 정착한 다음 서로 싸우기 시작하였다. 스웨덴이 승리하여 에스토니아와 오늘날 대부분의 라트비아지역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러시아간의 분쟁은 계속되고 러시아가 연방을 침략하여 상당 부분의 영토를 합병하였다.
17세기 프러시아에 의해 더욱 약화된 연방은 마침내 러시아,오스트리아, 프러시아에 의해 멋대로 분할되어 리투아니아의 대부분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된다.리투아니아는 19세기 러시아에 대항하는 폴란드의 반역에 두 번 가담하여 농민들은 1861년까지 자유를 얻지 못하였다. 1864년부터 러시아는 카톨릭교인들을 박해했으며, 러시아문자를 사용했을 때에만 리투아니아어로 책이 발행될 수 있었고 폴란드어로 된 책들은 출판이 금지되었다.
1차 세계대전 중 독일은 리투아니아를 점령했으며,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리투아니아공화국정부가 수립되었다. 하지만 폴란드가 독립하면서 상황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폴란드군대는 1919년 빌니우스를 침입하여, 1920년대에 3개월을 제외하고는 1939년까지 리투아니아를 점령한다. 1920년 소비에트러시아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평화협정에 조인한다.리투아니아는 1926년 군사쿠데타를 치르고, 1929년부터 이탈리아 뭇솔리니와 유사한 정책을 펴는 안타나스 스메토나(Antanas Smetona)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1939년 8월 23일 나치독일과 소련은 리투아니아를 나치독일의 권역에 두는 몰로토프-리벤트롭(Molotov-Ribbentrop) 불가침조약을 체결한다. 리투아니아는 나치의 폴란드침략에 동참하기를 거부하여 다시 소련의 영향하로 편입된다. 1939년 10월 소련 붉은 군단이 동부 폴란드를 침입하면서 리투아니아는 빌니우스를 되찾는다. 동시에 독일은 서부 폴란드를 침입한다. 1940년 8월부터 리투아니아는 소비에트군부의 지배를 받고 공산주의자들이 정부를 구성하고 소련연방(USSR)공화국의 하나가 된다.
1941년 히틀러가 침공하여 거의 모든 유태인들이 나치점령기간동안 캠프나 게토에서 학살당했다. 소련군이 1944년 말 다시 점령하여 리투아니아가 주권을 회복하기위한 첫걸음을 시작하는 1980년 까지 지배한다.미하일 고르바쵸프의 개방(glasnost)과 개혁(perestroika)정책의 직접적인 결과로, 운동이라는 뜻의 사유디스(Sajudis)라 불리우는 국민의 광범한 지지를 받는 단체가 결성된다. 리투아니아는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위한 발틱지역의 운동을 선도한다.
사유디스는 1989년 3월 소련연방 인민회의의 리투아니아지역선거에서 42석 중 30석을 석권하고, 그 해 12월 리투아니아공산당은 소련연방의 공산당과 결별한다. 이러한 시도는 소련연방의 해체의 징후가 되었고 특히 리투아니아는 공산당이 아닌 당을 합법화하는 최초의 소비에트공화국이 되었다. 1990년 2월 사유디스는 리투아니아 상원 소비에트의 다수당이 되고 3월 11일 의회는 리투아니아가 독립공화국임을 선언한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 소련은 몇 주간 위협적인 군사행동과 경제봉쇄로 응답한다.
사유디스의 지도자 뷔타우타스 란드베르기스(Vytautas Landsbergis)는 리투아니아와 소련정부간의 독립에 관한 대화에서 100일간의 독립선언 유예기간을 둘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강경파의 부상으로 소련군대는 빌니우스의 주요기관을 점거하고, 텔레비젼 송신탑과 본부 점거시 13명의 사람이 죽는다. 마침내 서방세계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며 1991년 9월 6일 소련도 독립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1991년 9월 17일 리투아니아는 유엔에 가입하고 되찾은 국가독립의 기쁨을 즐기기 시작한다. 1998년 성인시절 대부분을 시카고에서 미국환경보호단체의 고위 정책전문가로 일하던 리투아니아 이주민 발다스 아담쿠스(Valdas Adamkus)가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source : L_AGOlsph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