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Finland - 지리, 기후, 역사
핀란드 (Finland)
밤이 무척이나 길고 긴 핀란드에서, 실내에 움츠리고 앉아 보드카를 한 두잔 마시는 것 이외에도 할 일은 무척 많다. 얼어붙은 드넓은 호수를 가로지르며 스키를 탈 수도 있고 여행의 노독을 풀기 위해 향기로운 자작나무 가지로 가볍게 몸을 두드리며 사우나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백야를 볼 수 있는 몇 달 동안, 투르크군도(Turku archipelago)와 올란드섬 ( land Islands)을 포함한 해안 지방에서 요트타기와 낚시하기는 더 없이 좋다. 유럽에서 가장 오염되지 않은 천연의 자연을 지닌 내륙지방은 매년 수많은 트렉커들이 찾아오는 곳이다.남쪽의 수도 헬싱키(Helsinki)에는 30여 개의 갤러리와 박물관들이 있으며, 북쪽에는 싼타 클로스가 일년 중 364일을 쉬고 있다. 순록투어나 쇄빙선 크루즈를 즐기며, 자정에 골프를 칠 수 있는 나라가 세계에 또 어디 있겠는가?
통계 자료
국명: 핀란드(Finland)
면적: 338,000 평방km
인구: 500만 명
수도: 헬싱키 (Helsinki - 인구891,000명 )
인종: 98% 핀족, 0. 7% 사미족, 집시
언어: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영어가 널리 통용된다.)
종교; 루터교와 러시아정교
정체: 민주주의 공화국
지리 및 기후
338,000평방km의 면적을 가진 핀란드는 유럽에서 7번째로 큰 나라이다.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하며 이들 나라와의 국경선은1269km에 달하고, 노르웨이의 북극지방과 716km, 스웨덴 북서쪽과는 586km의 국경선을 이룬다. 핀란드만(The Gulf of Finland)은 남부 핀란드와 에스토니아(Estonia) 를 구분 짓고 있다. 국토의 3분의 2는 삼림지대이며 그 나머지는 북극권이다. 후기빙하기에 형성된 호수들은 이 나라의 특징으로, 소택지와 습지를 포함하면 국토의 약 10%가 물로 덮여있는 셈이다.
핀란드에서 제일 높은 곳은 해발 1328m의 할티(Halti)이다. 활기가 넘치는 5월 말에서 9월 사이, 핀란드의 식물 종은 놀랄 만큼 다채롭다. 7월에 남부 일부 저지대 계곡들은 마치 정글과 같다. 수종은 소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가 대부분이며, 가문비나무가 대표적인 수종인 낙엽수림의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 핀란드 숲에서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털로 뒤덮인 큰 공모양의 동물은 갈색 불곰이다. 그 외의 포유류는 엘크, 여우, 스라소니, 나그네쥐, 고슴도치 등이 있으며, 핀란드 북쪽에는 순록이 많고 비버도 아주 흔하다.
멧닭, 딱따구리, 두루미, 새 먹이의 일종인 물수리 새 등을 포함하여 300여 종의 조류가 서식한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두 조류는 되 새와 버드나무 새이다. 핀란드의 겨울은 혹독하게 춥다. 남부는 1월과 2월에 섭씨 영하 15도까지 내려가고, 북부는 종종 섭씨 영하30도 이하로 내려가기도 하는데, 이 시기에는 하루의 대부분이 어두컴컴하다. 여름이 다시 돌아와 백야가 진가를 발휘하게 되면, 북쪽은 섭씨 약 15도, 남쪽은 섭씨 20도 정도가 된다 (섭씨 30도를 넘을 수도 있지만).
역사
핀란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일 만 년 전 빙하기 말기부터이다. 핀란드인 조상들은 기원 훨씬 전 발틱 해안 북부에 도달하였는데, 그 이전에 북 러시아의 절반을 지배한 것으로 여겨진다. 바이킹시대 말, 스웨덴 무역상과 우두머리들은 발틱지역 전역으로 그들의 관심을 넓혔다.
수세기 동안 프로테스탄트의 스웨덴제국과 동방정교인 러시아 사이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있었던 핀란드는, 12세기부터 1809년까지 7세기 동안은 스웨덴에 속해 있었다.러시아와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핀란드 전역은 황폐화되고 심한 기근을 겪는다. 1696년부터 1697년까지 1년 사이에 핀란드인의 3분의 1이 기근으로 죽었다. 러시아에 항거하는 격렬한 전쟁으로 1700년대는 점철되었고, 1809년 결국 러시아에 패하고 만다. 19세기 후반에 밀어닥친 민족주의에 힘입어 핀란드는 대공국 (Grand Duchy)이 되어 크게 자율성을 얻지만, 새로운 억압과 러시아화 정책을 겪어야 했고, 이는 독립을 향한 의지를 성숙시키는 계기가 된다.
러시아 전제군주제의 몰락과 1917년 사회주의혁명의 영향으로 핀란드상원은 1917년 12월 6일 독립을 선포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지지를 받던 적색당과 독일을 모범으로 삼는 민족주의자들의 백색당이 격돌하는 등 부도덕한 내부폭력이 들끓게 되었다. 108일간 끌었던 처참한 시민전쟁은 3만 명 가까운 핀란드인을 동족의 손에 죽게 만들었다. 백색당이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2차 세계대전 후 약해진 독일은 신뢰를 잃어 더 이상 정치의 모범이 될 수 없었고 소련과의 관계는 곧 정상화되었다. 정치적인 해결은 시민전쟁의 상처를 다소 치유할 수 있었지만, 평화시대에 있었던 대학살에 관한 후문은 어두운 핀란드역사에서 여전히 드러나고 있다.
1930년대 초에는 반공 폭동이 빈번하였고, 1932년 불가침조약 협정에도 불구하고 소련과의 관계는 여전히 불편하였다. 소련 방위에 대한 관심이 결국은 핀란드 카렐리안 지역에서 일어난 1932년 겨울전쟁 (Winter War)을 불러일으켰다. 여러 달 동안 핀란드는 용감히 싸웠지만, 결국 카렐리아 (Karelia) 일부와 그 인근 섬 몇 군데를 잃게 되었다. 서방 연합군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핀란드는 마침내 독일을 향해 원조를 청했고, 18세기 이래로 러시아에 속해있던 일부 지방을 포함하여 카렐리아를 다시 차지하게 되었다. 1944년 여름 러시아 군대가 대규모 반격을 감행했을 때, 핀란드는 화평을 청하게 된다. 1945년 봄 전면적인 평화가 올 때까지 핀란드는 라플란드(Lapland )에서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참혹한 전쟁을 치르게 된다. 핀란드는 전쟁으로 심각한 군사적 피해는 물론 소련이 요구하는 배상금 때문에 경제적인 재앙을 겪게 되었다. 국력이 약해진 핀란드는 소련과의 관계에서 카렐리안 협부(Karelian Isthmus)를 양도하고 소련의 국경선 방위정책을 인정하는 등 새로운 노선을 택하게 된다.
우르호 케꼬넨 (Urho Kekkonen) 대통령은 재임25년 동안(1956-81) 현명하게 균형 잡힌 정책을 펼쳤다. 그는 국내에서 강한 권력을 유지하였고 동쪽의 큰 곰(소련)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스칸디나비아 형제국들과 유대를 강화하려고 애썼다.소련의 붕괴로 핀란드는 어려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한편으로 자유시장체제를 유지하고 있던 핀란드는 1980년대 후반 경기침체를 겪었고, 설상가상으로 밀접한 경제관계를 가졌던 채무국 소련의 붕괴는 큰 타격을 가져왔다.
핀란드의 관대한 사회보장 정책은 급격한 실업률 상승을 가져와 정부재정에 심각한 압박을 가했다. 1990년대 과열되었던 핀란드 경제는 불안정한 화폐가치로 냉각기를 거치게 되어 화폐가치가 약 25% 정도 떨어진다. 1994년 후반 핀란드는 EU가입을 투표로 정하고 1995년 회원국이 된다. 1995년 선거에서 사회민주연합당이 우파연합을 밀어내었다. 2000년 2월 좌파성향의 타르야 할로넨 (Tarja Halonen.)이 최초의 여자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source : mPs_lCNRN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