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UAE - 지리, 기후, 역사
아랍에미레이트 (UAE)
아랍에미레이트는 1971년 걸프해에서 영국이 철수했을 때 형성된 7개 자치왕국의 연방이다. 여행사들은 '콘트라스트의 땅'이라고 과대광고를 하면서 아랍에미레이트로 여행올 것을 선전하고 있다. 이 상투적인 표현에 한 가닥의 진실이라도 있는가?
이번에는 좀더 완곡하게 표현해서, 산, 해변, 사막, 오아시스, 낙타타기, 베두인족(유목인)시장, 전설적인 두바이(Dubai)에서의 면세쇼핑, 이 모든 것이 비교적 작은 지역에 모두 있다고 자랑하고 있다. 여행자가 걸프해에서 오직 한나라만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아랍에미레이트는 가장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아랍에미레이트에는 걸프해에서 가장 편한 입국규정, 가장 좋은 관광 사회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달러를 써대는 관광객을 상대로만 선전을 하고 있지만 경비를 아끼는 개별여행자에게도 아주 가 볼만한 곳이다.
통계 자료
국명: 아랍에미리에트 연방
면적: 83,600 sq km (32,400 sq mi)
인구: 200만명
수도: 아부다비(Abu Dhabi) (인구 36만5천명)
인종: 아랍인 87%, 파키스탄인 9%, 이란인 2%
언어: 아랍어
종교: 이슬람
정체: 연방의회를 갖춘 군주제
지리 및 기후
아랍에미레이트는 아라비아반도의 북동쪽끝에서 페르시아만으로 코뿔소의 뿔모양으로 불쑥 튀어나온 곳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과 서쪽으로는 사우디 아라비아, 동쪽으로 오만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쪽 해안은 페르시아만 건너편으로 이란과 마주보고 있으며 카타르는 북서쪽으로 약 50킬로미터(30마일)지점에 있다.
7개의 에미레이트(토후국)는 아부다비(Abu Dhabi), 아즈만(Ajman), 두바이(Dubai), 푸자이라(Fujairah), 라스 알-카이마(Ras al-Khaimah), 샤르자(Sharjah), 움 알 카이와인(Umm al Qaiwain)이다. 전체적으로 아랍에미레이트는 거의 포르투갈과 같은 면적이다. 아부다비 에미레이트가 전체의 85%를 차지하고 있으며 가장 작은 에미레이트인 아즈만은 단지 250평방킬로미터(100평방마일)에 불과하다.
아랍에미레이트의 내륙 대부분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남동부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 사막인 엠프트 쿼터(Empty Quarter)의 끝자락에 위치한 건조한 사막지대이다. 아랍에미레이트의 해안지역은 소금평원으로 되어 있으며 북부와 동부지역은 인상적인 푸른 산악풍경이 펼쳐져 있다. 서식하는 동물로는 아라비아표범, 아이벡스가 있지만 낙타나 야생염소보다 더 자주 볼 수는 없을것이다. 봄과 가을에는 중앙 아시아와 동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철새무리를 북부지역에서 가끔 볼 수가 있다.
푸자이라와 라스 알-카이마의 산악지역외에 아랍에미레이트의 대부분의 초원은 정부의 '녹원'정책의 결과이다. 아랍에미레이트의 동부국경에 있는 부라이미 오아시스(Buraimi Oasis)의 천연 대추야지숲조차 시립공원에서 자란 막대한 잔디와 나무로 보충한 것이다.아부다비와 두바이는 5월부터 9월까지 습도가 높고 낮동안의 기온은 대개 섭씨 40도(화씨 105도)를 웃돈다. 푸자이라, 코르 파칸(Khor Fakkan)의 동부 해안도첼【??가끔부는 바람덕분에 기후가 약간 나은편이며 라스 알-카이마뒤의 산악지대에서 또한 약간의 더 누그러진다.
그외의 달에는 일일 평균 최고 기온이 좀더 쾌적한 섭씨 22-30도(화씨 70-85)로 떨어지며 아부다비, 두바이에서는 바람이 심하게 불고 알-아인(Al-Ain)주변의 사막지대에서는 아주 추운 날씨가 되기도 한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으며 나머지기간에는 아주 적은 양이 내리며 12월과 1월에는 온통 진창이 되기도 하여 방심할 수 없는 때이기도 하다.
역사
아랍에미레이트 최초의 주요정착지는 청동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C3세기에 움 안-나르(Umm an-Nar)라고 알려진 문화가 현재의 아부다비 부근에서 일어났으며 그 영향력이 내륙과 지금의 오만지역의 해안을 따라 확대된다. 다음으로 그리스인들이 샤르자에서 50킬로미터(30마일)떨어진 멜레이하(Meleiha), 움 알-카이완 에미레이트의 알-두르(Al-Dour)에서 발견되는 강한 헬레니즘 문화의 특징을 나타낸 주요한 문화적 영향과 유적을 남기게 된다.
중세시대에 아랍에미레이트 대부분의 지역은 걸프해로의 진입과 무역을 관리한 호르무즈(Hormuz)왕국의 일부가 된다.1498년에 포르투갈인이 도착하게 되며 1515년까지 인도와 극동과의 무역으로 번창하던 걸프해에세금을 매기는 세관을 건설하면서 라스 알-카이마부근의 줄파(Julfar)까지 점령하게 된다.
포르투갈은 1633년까지 지배하게 되며 18세기 중반에 걸프해에서 해상력을 훈련하기 시작한 영국인들이뒤이어 들어오게 된다. 영국은 걸프해에서 페르시아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던 항해일파인카와심(Qawasim) 부족연합과 분쟁을 일으키며 파이어릿 코스트(Pirate Coast) 지역으로 진격하여 카와심을 습격하게 된다.
1820년에 영국함대는 발견한 모든 카와심의 선박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거나 나포하게 되며 그 지역의 9개 아랍 왕국에 일반평화조약을 강요하고 주둔지를 설치하게 된다. 전투가 종결됨에 따라 유럽인은 이 지역을 트루셜 코스트(Trucial Coast0라고 부르게 되며 이름은 1971년까지도 지속된다. 이기간동안 내륙의 베두인부족사이의 주요권력은 현재의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통치가문의 선조로 구성된 바니 야스(Bani Yas) 부족연합이 갖고 있었다.
바니 야스는 원래 엠프티 쿼터의 끝에 있는 오아시스인 리와(Liwa)에 근거를 두고 있었지만 1793년에 아부다비로 옮겨오게 된다. 그들은 낙타유목, 소규모의 농업, 부족습격, 자신의 영역을 통과하는 카라반으로부터 보호금탈취같은 전통적인 유목민의 활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영국이 해안을 따라 노예제를 금지한 후에 바니 야스는 노예무역을 인계받게 되고 부라이미(Buraimi)가 동부 아라비아의 주요 노예시장이 되며 이러한 지위는 1950년대까지도 지속된다.
영국은 베두인족을 정복하는것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으며 인도와의 연결선을 확보하고 프랑스, 러시아같은 유럽의 경쟁국들로부터 그 지역을 유지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영국은 1892년에 공식적으로 트루셜 코스트에 대해 보호령을 설립하게 되지만 이 지역을 20세기초까지 어부, 진주채취 다이버, 베두인족의 오지로남겨두게 된다. 대부분의 이 식민통치기간동안 샤르자가 에미레이트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이 늘어나고 강력하게 되지만 19세기에 가까워지면서 아부다비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게 되고 나중에아부다비는 두바이에 의해 그 빛을 잃게 된다.기름시추로 인해 사실상 영국의 무간섭주의적인 태도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기름채굴권이 보장되기 전에 서로 다른 에미레이트간의 국경을 결정해야만 했다. 현지의 어떤 통치자도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아랍에미레이트를 구성하는 7개의 에미레이트의 국경을 구분하는 일이 영국에게 남겨지게 된다. 첫 번째 기름채굴권이 1939년에 보장되지만 다음 14년동안 기름은 발견되지 않는다. 1962년에 아부다비에서 기름수출을 시작하게 되면서 7개의 에미레이트중에 가장 가난하던 곳이 가장 부유한 곳으로 바뀌게 된다.
반면 두바이는 그 지역에서 가장 분주한 무역항으로서의 명성을 공고히 하기위해 온 힘을 집중하게 된다. 두바이는 자체내에 기름을 발견하게되는 1966년에 이미 성공한 중계무역항이 된다. 다른 에미레이트들은 그리 운이 좋지 않았으며 보조금을 얻기위해 아부다비로 향하게 된다.1971년까지 걸프해에서 떠날 계획이라고 영국이 1968년에 발표했을 때 대부분의 통치자들에게 충격을 주게 된다. 영국의 원래 계획은 바레인, 카타르, 트루셜 코스트로 구성된 하나의 단일국가를 형성하는 것이었지만 이것은 거의 즉각적으로 깨지게 된다. 1971년 협상을 통해 사실상 바레인, 카타르가 독립을 하게 되고 새로운 연방국인 아랍에미레이트가 형성된다.
그 당시에 많은 외부인들이 아랍에미레이트를 엉성하게 모아놓은 인위적인 영국의 창작물로서 여겼다. 이것이 어느정도 사실로 드러난 반면 좀더 작고 가난한 에미레이트들이 스스로의 영토만으로는 독립국으로서 생존해갈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것도 사실이다. 비관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아랍에미레이트는 아랍세계에서 가장 안정되고 문제가 없는 나라로 주요한 국제 사업중심지가 되었다.아랍에미레이트에서의 정치적인 생활이 논쟁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에미레이트간의 국경분쟁이 1970년대내내 계속되었으며 수행되어야할 7개 에미레이트간의 통합정도도 끊임없는 분쟁거리로 남아있다. 아랍에미레이트는 1990-91년에 반-이라크연합에 군대를 파견했으며 쿠웨이트의 자유화이전에 수개월동안 외국군이 주둔하기도 한다. 그 결과로 서방과의 강한 유대를 더욱강화시키게 되지만 이것으로 인해 아랍에미레이트(특히 두바이)가 이란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중단시키지는 못한다.
1998년초에 아랍에미레이트는 기름가격의 추락을 겪게 된다. 1998년 1/4분기동안 이 검은 끈적끈적한 물질의 가격이 35%나 떨어지게 되고 아랍에미레이트의 정부 수입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그 중 70%가 기름가격 하락에서 기인한 것이다.
source : 20eGmjRls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