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Bhutan - 지리, 역사. 여행정보
부탄(Bhutan)
부탄은 시간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않은 특이한 나라이다. 이 나라는 장엄한 히말라야 산맥의 중심부에 묻혀, 스스로 몇 세기 동안 다른 세계와 동떨어져 고립된 상태로 지냈다. 1974년부터 시작된 신중한 개방 이후 여행자들은 이 나라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 경이로운 풍경과 건축물들, 친절하고 매력적인 사람들, 그리고 독특하고 순수한 문화는 이 나라의 매력거리들이다.
풍부한 자연 자원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부탄은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로 대두되며 다른 나라와 달리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발전만을 추구하는’ 태도를 피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옛 문화와 자연 자원, 그리고 그들의 불교식 생활 양식을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는 부탄은, 과거와 미래에 양 발을 걸친 채 침착하게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통계 자료
국명 : 부탄 왕국(Kingdom of Bhutan)
면적 : 46,620 sq km (18,182 sq mi)
인구 : 600,000
수도 : 팀푸(Thimphu, 인구 20,000)
민족 : 사르춉(Sarchops, 아삼인), 냐롱(Ngalong,부티아인, 정치 경제적 지배 민족), 롯샴파(Lhotshampa, 네팔인) 언어 : 죵카(Dzongkha)
종교 : 드룩파 카규(Drukpa Kagyu) 불교
정체 : 왕정
국왕 : 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
수상 : Jigme Yoser Thinley
지리 및 기후
정식명칭은 부탄왕국(Kingdom of Bhutan)이다. 북쪽은 히말라야산맥의 높은 산으로 중국의 티베트와 접하고, 동쪽에서 남쪽은 인도의 아삼(Assam) 지방, 서쪽은 서벵골(West Bengal) 및 시킴(Sikkim)을 사이에 두고 네팔과 대하고, 아삼, 히말라야산맥의 남쪽 사면을 차지하고 있다.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악지대로 평야가 거의 없다. 최근까지 인도의 보호 아래 있었으며, 티베트 문화권에 속하고 티베트와 같이 통상수교거부정책을 써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인도는 부탄과의 국경선에 여행 금지선을 설정하여 현재까지 외국인 입국자가 가장 적은 비경(秘境)으로 존재한다. 오래 전에 사라진 탄트라(tantra)의 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1971년 국제연합(UN)에 가입하였다. 행정구역은 18개 행정구(dzongkhag)로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아열대에 속해 있으나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온대지대보다도 기온이 약간 낮다. 여름의 계절풍은 산지사면에 많은 비를 몰아와 연강우량이 3,000∼5,000mm에 달한다. 그러나 곡저평야에는 비교적 비가 적고 기온도 높아 말라리아 등이 발생한다.
역사
수 천년 전부터 네팔 산지의 협곡에 인간이 거주했다는 고고학적 근거는 있다. 부탄인들은 현재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믿는 로푸(Lhopu)족이 부탄 남서쪽에 거주한 것으로 알고 있다. 로푸족은 혈통상으로 티베트와 몽골에서 도래하였으며, 언어는 티베트-버마어 계통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소수종족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중부와 서부 계곡에 거주한 응갈롭(Ngalop)족이 대부분이다. 구루 림포체(Guru Rimpoche) 또는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가 서기 659년 경 부탄의 파로와 붐탕에 탄타르 불교를 도입한 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1600년 초기까지 부탄은 각 라마(lama)들과 군 지도자들에 의한 분열 상태가 지속되었는데, 티베트에서 이주한 군인들이 띰부 계곡으로 들어가 군권을 동원해 국가를 세웠다. 이때 세워진 국가들은 '제 켐포(Je Khempo)'라는 영적 지도자와 '데시 드럭(Desi Druk)'이라는 행정지도자로 양분되어 통치되었고, 현재까지 이러한 관습이 전해진다. 그러나 강력한 중앙집권형 국가는 등장하지 않았고 1885년까지 분열된 상태가 이어졌다. 1700년대 초 부탄은 남쪽 소국을 침략하여 왕국의 영향권 하에 두었는데, 1772년 전쟁에 패배한 남쪽 소국은 영국 동인도 회사에게 부탄의 압력을 소멸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결국 1774년 부탄과 영국은 1730년대 이전 전쟁이 발발하기 전 상황으로 되돌리는 조약을 체결했다. 영국은 몇 차례 국경전쟁을 통해 부탄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1870~1880년에는 파로와 쩡사 계곡 간의 내전이 발생했다. 1885년 쩡사 계곡의 통치자가 승리함으로써 모든 권력을 장악했지만 이는 영국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1907년 12월 17일 영국의 영향아래에서 부탄은 왕추크(Ugyen Wangchuck)를 국왕으로 하는 군주제를 채택하게 된다.
3년 후 부탄은 영국의 보호령이 된다는 조약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득세하였고, 1931년 인도의 간디가 반대세력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1969년부터 시작된 절대군주제에 대한 반대는 높아져 3대 왕인 지그미 도지 왕추크(Jigme Dorji Wangchuck)가 사망한 1972년에 들어서야 국회에서 왕의 절대적 권한에 대한 거부권이 행사되기 시작했다. 4대 왕에 들어서도 왕의 권한에 대한 의회의 견제가 심해졌고, 1998년 공식적으로 절대왕정은 무너졌다.
2005년 12월 지그미 싱예 왕추크(Jigme Singye Wangchuck)왕은 2008년부터 입헌군주제를 채택할 것이며, 신헌법과 새로운 선거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2006년 그는 이러한 약속을 번복하고 왕권을 그의 아들이 지그미 케사 남젤 왕추크(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에게 이양했다.
경제
국내 총 생산 GDP : US$ 13억 달러
1인당 국민 총 생산 GNP : US$ 2,114 달러
연 성장률 : 6.8%
인플레이션 : 7%
주요 산업 : 광업, 목재, 과일 재배, 관광, 수력 발전 수출(인디아 대상)
주요 교역국 : 인디아, 방글라데시
문화
지리적 고립과 정부의 고립정책에 따라 부탄은 상대적으로 그들의 고유 문화를 지켜올 수 있었다. 깨끗한 히말라야산(山)에 무한정으로 자생하는 대부분의 약초를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눈 속의 야생동물 표범, 고산지대의 염소, 검은 목 두루미는 이곳의 명물이기도 하다.
그곳의 사람들은 자연과 깨끗한 환경만이 인류 최대의 보물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를 실천이라도 하듯 자연과 사람이 가장 친밀한 관계 속에서 삶이 이어지고 있다. 일상생활에 깊이 스며 있는 종교는 그들의 도덕성과 윤리를 규정하고, 자연과의 친화로 자연을 닮은 그들의 정신은 순수 그 자체를 의미한다. 또한 부탄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선명하고 다양한 색조로 단장되어 히말라야 구릉마다에 세워져 있는 사찰과 높은 장대 끝에 사람을 부르는 듯 휘날리는 깃발, 그리고 붉은 가사를 걸친 승려들이다.
목탁 대신 기도 바퀴(prayer wheal)를 들고 대중들과 어우러져 함께 숨쉬고 있는 붉은 승복의 스님들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는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그대로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부탄은 오래 전에 사라진 밀교 탄트라의 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그들의 의복은 지금도 전통으로 이어 내려오는 기법의 수작업을 통해 제작되고 있다. 그들의 언어인 종카어(語) 역시 긴 세월을 통해 변천의 과정도 있었을 법한데, 지금도 그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사용하던 그대로의 고어를 사용하고 있다. 부탄은 전통적으로 모계사회로 가정의 모든 재산 분배권은 여성에게 있다.
남성들은 주로 집안일을 돌보며 여성들이 바깥 일을 도맡아 해왔다. 결혼도 필수적이지 않았고, 이혼도 그리 힘든 선택은 아니다. 주로 6개월 간의 동거 생활을 한 뒤에 혼인신고를 하는 풍습이 있다. 주로 신랑이 신부의 집에 거주하면서 각종 노동력을 제공한다.
경비 및 환전
통화 : 뉼트럼(Ngultrum, NU))
일반경비
저렴한 식사: US$1-2 중간 가격대 레스토랑: US$2-4 고급 레스토랑: US$10 저렴한 숙소: US$1-3 중급 호텔: US$5-7 고급 호텔: US$150-200
여행자에게 부과되는 여행세는 호텔에서 묵든 트레킹을 떠나든 US$200이다. 이 금액은 모든 숙소와 음식, 부탄 내의 육로 교통 수단, 가이드, 포터, 짐 나르는 동물, 그리고 문화 프로그램 등을 모두 포함한 금액이다. 이 금액은 위치, 계절, 그리고 요구하거나 제공된 그 어떠한 숙소 형태와도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적용된다(이 말은 즉, 여행자가 예약한 멋진 호텔에서 쫓겨나도 –성수기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만 – 금액이 반환되거나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네 명 미만의 여행자의 경우는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데 가령 3명 그룹은 US$20, 혼자 여행할 경우는 US$40 까지 더 내야 한다. 이 금액에는 모든 여행 경비가 포함되지만 음료수나 세탁, 또는 전통적인 부탄의 목욕탕 등의 문화적인 사치의 비용은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부탄에는 두개의 은행이 있는데 전국에 걸쳐 지점이 있다. 모든 은행과 대부분의 호텔에서는 여행자 수표로 지불이 가능하지만 아메리칸 엑스프레스 등의 잘 알려진 이름만 받아 준다.
신용 카드를 쓰겠다는 기대는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부탄에는 현금 인출기가 없다.부탄에서의 팁은 예절상 필요한 것이 아니다 - 직원들은 팁을 받으면 당황해 하지만 호의에 감사해 한다. 여행자들이 같은 가이드나 운전사와 계속해서 여행을 계속할 경우 그들에게 팁을 주어야 한다. 가이드에게는 하루 US$2-3 정도, 운전사에게는 그보다 조금 덜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트레킹 가이드는 훨씬 더 많은 금액을 바라는데 적어도 위 금액의 두 배 정도이다. 흥정은 부탄인들의 전통이 아니다. 아무리 잘 깎는 사람이라도 여기서는 그리 효력이 없을 것이다.
여행 시기
가장 좋은 여행 시기는 10월에서 11월과 주요 축제가 열리는 동안이다. 기후는 9월 하순에서 11월 하순까지의 가을이 가장 좋아서 하늘은 청명하며 높은 산의 정상도 보인다. 이 때는 트레킹을 위해 이상적인 때이면서 부탄 전역을 여행하는 데 가장 좋은 시기이다. 계절에 관계없이 흠뻑 젖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6월에서 8월 사이의 몬순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 때는 팀푸에서 평균 50cm의 비가 쏟아져 내리며 동부 고원에서는 1m나 되는 비가 퍼부어진다. 주의 사항 동부 부탄으로 가는 길은 길고 험하며 어려운 고행의 길이다. 늙어 죽기 전에 돌아오기 위해서, 많은 부탄인들은 일단 평원을 건너 인도로 건너가 다시 페운트숄링(Pheuntsholing)을 통해 부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독립 국가를 세우려는 아삼 연합 자유전선(United Liberation Front of Assam, ULFA) 같은 인도의 분리 세력에 의해 발생하는 안전상의 문제로 인해, 아삼(Assam)을 여행하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source : 9aUWsnqUrl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