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미국 휩쓰는 韓食 한류
뉴욕에서 LA까지 퓨전 한식 잇단 흥행 “올 연말 K-푸드가 라스베이거스에 상륙한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코스모폴리탄 호텔 4층 야외수영장. 아리아 호텔의 화려한 조명을 배경으로 둔 옥외 대형 전광판에 칼질을 연상케하는 거친 붓칠과 함께 턱수염이 덥수룩한 동양인 셰프가 등장했다. 한국계 미국인 요리사 데이비드 장(David Chang)이다.
한국인에겐 낯설지만 장 셰프는 모모후쿠(Momofuku)·밀크바(milk bar) 등 미 전역에 수십개 레스토랑을 거느린 모모후쿠 그룹 대표로 미국 요식업계 스타다. 그는 지난 2010년 피겨스타 김연아와 함께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요식업계 관계자는 “데이비드 장이 라스베이거스에 첫선을 보이는 자신의 식당 광고에 ‘한식’을 내세운 것을 보니 한식이 트렌드가 되긴 한 모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장 셰프는 그동안 언론에 한국과 자신의 레스토랑을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 불만을 표시해왔다.
◆ 미국, 일식·중식에 이어 한식 주목
“올해 맛본 가장 흥미진진한 메뉴.”
미국의 대표적 요리 잡지인 <본아페티(Bon Appetit)> 9월호는 로스앤젤레스 소재 한식 레스토랑 바루(Baroo)를 4페이지에 걸쳐 대서특필했다. 바루는 <본아페티>가 선정한 ‘올해 베스트 신장개업 식당’으로 이 잡지는 바루의 메뉴는 물론 메인 셰프인 어광의 인터뷰까지 다뤘다.
잡지의 화려한 소개와 달리 LA 산타모니카 소재 식당은 소박했다. 미장원과 세븐일레븐 편의점 사이에 있는 식당 입구엔 예전 점주가 붙인 것으로 보이는 ‘타이누들’ 스티커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크기도 작았다. 테이블 하나에 19개 좌석이 전부였고 직원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주메뉴는 비빔밥과 파스타. 대표 메뉴인 김치프라이드라이스(Kimchi Fried Rice)는 안남미를 쓴 것과 새싹과 파인애플을 올린 것을 빼면 김가루에 계란프라이를 얹은 모양이 영락없는 김치볶음밥이었다. 외국인들은 독창적이라고 열광했다.
한식한류, 이른바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미국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정식’ ‘단지’ ‘한잔’ 등 모던 한식 레스토랑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식이 동아시아 푸드의 한 장르로 자리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맨해튼은 전 세계 파인다이닝(고급 레스토랑)의 격전지로 꼽힌다.
한식 열풍은 미 동부(뉴욕)에 그치지 않는다.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의 수도인 라스베이거스와 미 서부 대표 도시 로스앤젤레스에도 한식을 내건 레스토랑은 강세다. 한국인 셰프들은 최근 5~6년 새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뉴욕·뉴저지 중심의 레스토랑 컨설팅 기업인 ‘비스트로 요리’ 김한송 대표는 “미국 음식 전문 잡지에서 한국 식당을 소개하는 기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며 “<본아페티>는 물론 <푸드앤드와인>도 얼마 전부터 한국 식당을 빼먹지 않고 다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 대표는 미국조리사협회(ACF) 최연소 총주방장 심사위원이다.
한국 음식에 대한 이해도나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은 K-팝이나 한국 영화와 문화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에 있다. 김 대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영화배우 이병헌의 얼굴이 뉴저지 대형 전광판에 뜬 것과 같은 맥락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소셜미디어(SNS) 확산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새로운 유행을 갈구하는 소비자들에게 한식이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서양식은 구식(old fashion)에 해당한다”며 “중화요리도 지겹고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음식도 식상한 소비자들에게 한식은 신선한 메뉴”라고 설명했다.
◆ 삼성전자 뒷받침에 실력파 한국인 셰프 늘어
한식의 인지도 상승을 유행 변화로만 봐선 안 된다. 데이비드 장과 로이 최로 대표되는 재미교포 2~3세대 스타 셰프의 성공과 함께 김경문·임정식·강민구·원종훈 등 미국에서 활동하는 실력 있는 토종 한국인 셰프가 늘어난 것이 한몫했다.
한식 셰프 최초로 미슐랭 2스타를 받은 임정식 셰프에 이어 지난해 12월 뉴욕 맨해튼에 문을 연 강호동의 고깃집 ‘백정’ 셰프인 홍득기씨는 올해 <포브스>가 미국을 이끌 젊은 요리사에 선정됐다. 바루의 어광 셰프는 세계 최고 레스토랑인 덴마크 ‘노마(NOMA)’의 셰프로 재직했다.
한국 신진 셰프들이 미국에 자리 잡는 데에 삼성전자 등 한국 가전 대기업의 물밑 지원도 있었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가전의 최대 격전지인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요식업계와 요리전문학교를 대상으로 꾸준한 투자를 해왔다. 삼성전자는 세계 3대 요리전문학교인 미국 CIA와 협약을 맺고 지난해부터 자사 제품으로 꾸민 교육장을 운영 중이다. CI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 학생 숫자는 총 150명으로 유학생 출신지 중 한국 비중이 가장 크다.
한식이 인기를 끌면서 파리바게뜨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아호텔 지점은 지난 7월부터 메뉴에 밥을 추가했다. 밥 메뉴의 이름은 포크보울(Poke Bowl·포키). 포크보울은 밥 위에 샐러드와 참치, 연어 등을 얹어 소스를 부어 먹는 음식으로 우리나라의 회덮밥과 형태가 유사하다. 빵을 파는 베이커리의 고정관념을 깨고 패스트 한식으로 승부수를 건 셈이다.
포크보울 메뉴 도입은 파리바게뜨의 신우진 미주법인장이 주도했다. SPC 관계자는 “올해 미 캘리포니아 지역에 포크보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며 “약 3개월의 시장조사와 제품 개발을 통해 제품을 내놨다”고 설명했다. 가격은 스몰사이즈는 10달러 75센트, 라지는 12달러 75센트.
시장의 초기 반응은 뜨겁다. 미국 최대 소비자 리뷰 사이트인 옐프(Yelp)에선 한 소비자가 “프렌치 베이커리에서 아시안 음식을 먹는 것이 흥미롭다”고 평했다. SPC 관계자는 “라스베이거스 베네치아호텔 쇼핑센터 직원들 사이에 단체 구매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에서 유명한 유학파 셰프가 모두 미국 현지에서 인정받았다고 속단하긴 이르다. 미국 요식업계 관계자는 “데이비드 장 같은 재미교포 2세 셰프와 달리 최근 회자되는 신진 한인 셰프의 미국 내 인지도는 여전히 낮다”며 과대 평가를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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