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중부양 : 회오리바람 원리 응용 손 안대고 옮기는 장치
서울산업대(大) 산학협동 '캡스톤' 프로그램… 학생들 신기술 개발로 이어져
회오리바람 원리 응용 손 안대고 옮기는 장치
'졸업작품'으로 개발 기업체서 "기술 사겠다"
스승은 뜬구름 잡는 듯한 화두를 던졌다. "웨이퍼(wafer·반도체 재료로 쓰는 얇은 실리콘 판) 한 번 띄워 봐."
"네?" 제자 넷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승이 말을 이었다.
"웨이퍼 두께가 계속 얇아지고 있잖아. 앞으론 종이보다도 더 얇아져. 한 이송장치에서 다음 이송장치로 옮길 때 집게로 들어올렸다 내렸다 하면 표면이 손상될 거 아냐. 일본은 비접촉 기술을 개발했는데, 우리나라엔 없어."
작년 2월 서울 공릉동 서울산업대 다산관 '캡스톤 디자인 센터'에서 오간 대화다.
스승은 김종형(47) 교수.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삼성전자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제자 넷은 곽재원·이성철·김진수·이학성씨 등 이 학교 기계설계·자동화공학부에 다니는 26세 동갑내기 졸업반 학생들이었다.
'캡스톤(capstone)'은 건축가들이 벽을 세울 때 맨 위에 얹는 돌이다.
서울산업대는 해외 대학의 산·학 협동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해서 1985년부터 이 학교 4학년 학생들에게 산업현장에서 곧바로 쓸 수 있는 졸업 작품을 내게 하고 있다.
일명 '캡스톤 디자인' 과정이다. 이 학교 16개 학부와 학과 가운데 기계설계·자동화공학부 등 12개 학부와 학과는 이 과정이 필수 과정이다.
학생 4명이 한 조가 돼 지도교수에게 '과제'를 받고 이를 완수하지 못하면 졸업하지 못한다.
스승인 김 교수로부터 '웨이퍼를 공중부양시키라'는 졸업작품 과제를 받은 학생들은 주중에 2~3일씩, 주말에는 꼬박 실험실에 나와 밤을 새웠다.
"4학년이라서 다른 과목도 '학점 관리'를 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김 교수에게 하소연한 적도 있다.
김 교수는 "그건 각자 알아서 할 일이고, 어쨌든 웨이퍼가 공중부양해야 졸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자 이학성씨는 "김 교수님은 원칙주의자로 소문난 분이라 '이러다 정말 졸업을 못하는 건 아닌가' 싶은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학생들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딱 하나씩 감질나게 '힌트'를 줬다.
작년 4월 김 교수는 학생들 앞에서 종잇장을 손에 들고 '후' 불었다.
"이거 봐. 세게 불면 종이가 곧게 펴지지? 바람의 속도가 빠를수록 밑에서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거야."
무릎을 친 네 학생은 웨이퍼 밑부분에 바람을 불어넣어서 웨이퍼를 살짝 공중에 띄우는 운반장치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밥 먹듯 회의를 했다.
작년 7월 김 교수가 다시 힌트를 줬다. "회오리바람을 떠올려봐. 바람 바깥에 있는 건 모두 날려버리지만 바람 가운데 공간에서는 위로 솟구치잖아."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학생들은 가로·세로·높이 70㎝의 유리통 안에 회오리바람처럼 순간적으로 강한 압력의 바람이 불게 해서 웨이퍼가 위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작년 8월 서울산업대에서 시연회가 열렸다.
학생들이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지름 20㎝짜리 웨이퍼가 유리통 덮개에 달라붙듯 힘차게 떠올랐다. 학생들은 환호했다. 김 교수도 웃었다.
"너희들의 기술이 우리 반도체산업에 큰 도움이 될 거야."
학생들이 개발한 '비접촉 손(non-contact hand)'은 작년 11월 산업기술재단 주최로 열린 '창의적 종합설계 경진대회'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을 받았다.
특허도 출원했다. 더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일반 기업이 '그 기술을 사고 싶다'며 연락을 해온 것이다.
자동화부품 생산업체인 ㈜렉스닉테크놀로지는 서울산업대에 기술이전비 3000만원을 지불하고, 이 기술을 사용해서 올린 연간 매출의 5%를 로열티로 지급하기로 계약했다.
이 회사 김한동(49) 대표는 "당장 현장에서 상용화할 가능성이 높은 기술이라 투자했다"고 했다.
서울산업대 원시태(54) 산학협력단장은 "그동안 '캡스톤 디자인' 과정에서 나온 특허 출원 작품 27개 가운데 처음으로 실제 '돈'을 쥐게 된 사례"라며 "대학과 산업 현장의 거리를 좁힌 의미 있는 한 걸음"이라고 했다.
졸업과 동시에 LS산전에 입사한 곽재원씨는 "졸업 작품을 준비한 경험이 취업 활동은 물론 입사 후 적응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웨이퍼를 공중부양시키는 장치로 벌어들인 기술이전비 3000만원과 기술사용료는 학교 규정에 따라 학생과 교수, 학교가 각 6대 4의 비율로 나눠 갖는다.
서울산업대는 "아껴뒀다가 정말 뜻있는 사업에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